[예화이야기] 거지들이 상여를 메고 간 사연

Google+ LinkedIn Katalk +

최근에는 상여를 메고 장지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주로 장의차로 운구하여 장지나 화장터로 간다. 그러나 옛날에는 상여를 메고 인생을 타령하는 노래를 부르며 먼 길을 걸어서 장지까지 가다가 여러 차례 쉬어서 가기도 하였다. 상여는 앞에 10여 명. 뒤에 10여 명이 메고 가는데 상여 뒤에 유족들과 친척과 친지 그리고 교인들이 줄을 이어서 찬송을 부르며 갔다. 주로 찬송은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606장)를 불렀다. 그런데 상여를 메는 사람은 주로 고인(故人)과 관계가 깊으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메고 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곽선희 목사는 인천제일교회를 시무하다가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소망교회를 개척하여 대교회로 성장시켰다. 곽 목사의 고향은 황해도 장연군 용연면 석교리다. 교회는 석교(石橋)교회로 1904년에 설립되었으며 곽 목사의 조부 곽치응(郭致應.1939.장립)장로가 설립자로 신앙이 돈독하여 교회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높이 존경을 받으셨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많이 하셨는데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 가족들을 모아놓고 내가 얼마 못살 것 같으니 나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청을 하셨다. 내용인즉 뜰에 천막을 여러 개를 치고 면(面) 내에 있는 거지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거지들에게 잔치를 융성하게 베풀어 주고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곽 장로의 장례식 때 소위 거지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한사코 자기들이 상여를 메어야 한다며 먼 곳 장지까지 상여를 메고가서 하관예배를 드렸다. 거지들은 곽 장로께서 자기들을 가족처럼 사랑해 주셨다고 엉엉 울며 상여를 메었는데 그 후 그들이 모두 교회에 나왔다. 이 사실을 곽 목사께서 어느 예배에서 직접 말씀하였다. 곽 목사의 부친도 곽 빈(郭 彬) 장로로 2대가 장로, 곽 목사와 아들이 목사로 2대가 목사다. 신앙의 조상을 모신 곽 목사는 조상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여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가 되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목사>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