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동화> 한 마리의 엄마 펭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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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카메라 기자가 펭귄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펭귄의 모습을 근접촬영하고 있었어요. 엄마 펭귄들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물고기 빙어를 잡아가지고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그때 그 펭귄을 노리고 있던 천적 바다표범이 있었어요. 바다표범이 펭귄에게 확 달려들어서 어미 펭귄을 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어요. 잠시 후, 바다표범의 입속에 허술한 공간이 생겼는지 펭귄이 용케도 파닥파닥 거리며 바다표범의 입 밖으로 빠져나와서 쭈욱 얼음판에 미끄러져서 저쪽 얼음벽에 가서 부딪혔어요. 얘를 잡으러 바다표범이 뛰어 쫓아가는데 그때 어떤 다른 펭귄이 튀어 오르니까 바다표범은 그 펭귄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에는 피 흘리는 어미 펭귄 한마리만 있었어요.

엄마 펭귄은 조금 있다가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요. 그다음에 자기를 돌아보고 걷기 시작하는데 거기 눈 위에 핏자국이 흥건해요. 그러면 자기를 좀 챙기고 살기 위해서 쉬어야 될 거 같은데 계속 어디론가 걷기 시작해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계속 어디론가 가요. 가다가 지치면 배를 땅에 대고 발로 밀고 가요. 땅에 또 다른 핏자국이 생겨요. 자기 살 궁리를 해야지 어딜 가고 있는 걸까요?

한참을 지나서 보니까 카메라에 펭귄 군락지(群落地)가 보여요 어미 펭귄이 언덕에 올라가서 펭귄들을 바라보는데 햇빛이 비치니까 거의 수백 마리의 새끼 펭귄들이 ‘지지지지’하면서 돌아다녀요. 나는 한숨이 나왔어요. 모두 똑같이 생겼으니 저기서 어미가 새끼를 찾으려면 한나절은 걸리겠구나!

그런데 이 펭귄은 뭣 때문에 거기까지 온 걸까요? 뭐 하러 온 걸까요? 새끼를 찾아온 것이지요. 자기 새끼를 굶기지 않으려고 새끼 찾으러 거기 온 거에요. 그런데 거기서 어미펭귄이 ‘찌익찌익’ 소리를 내니까, 구석에 있던 펭귄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눈을 번쩍 뜨고 정신없이 달려오는 거예요. “아, 저놈이구나!” 근데 그 때요, 제 마음 가운데 어떤 울림이 있었어요. “아, 새끼양은 어미양의 음성을 듣는구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인데 엄마의 음성을 분별하더라니까요. 어미 펭귄이 내는 소리가 다 똑같은 소리가 아니었어요. 새끼가 기다리던 목소리는 따로 있었어요.

정신없이 새끼가 달려오는 데, 이 어미가 피 흘린 어깨로 새끼를 품에 안아요. 그리고 나서 제일 먼저 뭘 하냐면 뱃속에 있는 물고기를 꺼내가지고 그걸 씹어서 새끼에게 먹여주고 있었어요. 새끼에게 주려고 소화시키지 않았던 거예요. 피를 흘리고 이렇게 죽어가면서도 “내 새끼야, 배고프지? 내 새끼야, 배고프지?” 어미는 새끼 먹이려고 그걸 소화 시키지 않았던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어미 펭귄에게 이 마음을 넣어 주신 분, 태초부터 이맘을 어미 펭귄에게 넣어주신 분, 그 분이 누구일까?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분이 그 어미의 사랑을 알아요. 그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세요. 어미 펭귄이 있는 한, 그 새끼는 배고프지 않아요. 어미는 알았어요. “이 새끼를 먹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야! 다른 걸로 채울 수가 없어! 이 아이가 배고프면 내가 채워 줘야 돼!” 그 마음으로 새끼 펭귄에게 찾아온 그 어미의 마음이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세요.

그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세요. “내 새끼야, 배고프지 않니? 너의 그 배고픔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가 없어! 부모의 사랑으로도, 부부의 사랑으로도 너의 그 공백이 채워지지 않아! 세상의 인정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나의 사랑으로만 네가 만족할 수 있단다!”

여기 올려드린 동화에 나오는 어미 펭귄의 희생적이고도 헌신적인 모성애에 코끝이 찡해 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어느 마을 뒷산에 산불이 나서 동네사람들이 몰려가 진화하고 보니 불타 죽은 어미 닭의 품속에서 뜻밖에도 병아리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정인이 사건” “구미 모녀사건,” “청양 모녀사건,” “노원구 세 모녀사건” 등을 떠올리면서 어미 펭귄이나 어미 닭에게 차마 고개를 쳐들 수 없는 자괴감(自愧感)을 느끼게 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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