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하와이 이민 50년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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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민 50년사에는 멕시코 이민에 대한 비참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1905년 4월까지 하와이, 이민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멕시코 국적인 영국인 상인 마이어스(John Meyers)는 1904년 멕시코의 에네켄(henequen) 농장에 불법 이민을 추진하고 있었다. 에네켄은 해양업의 각종 선박에 쓰이는 ‘밧줄’의 주원료로 쓰이고 있어 당시 대호황을 누리고 있는 식물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대륙식산회사(大陸殖産會社)라는 이민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일본인과 결탁하여 5년 계약으로 농장에 사실상 농노로 파는 이민 모집을 하였다. 식산회사 명의로 대리점이 있는 서울, 인천, 개성, 평양, 진남포, 수원 등 6개 곳을 통해 농부 모집 광고를 냈다. 이렇게 해서 모집한 계약 노동자는 1.033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집조(執照, 여행권)를 프랑스 공사를 통해 받고 모두 선금 150환씩을 받고 1905년 3월 6일 인천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 베라크루즈에 5월 15일 상륙하였다. 그들은 유카탄, 메리다 지방에서 3일을 지나며 멕시코 식민회사의 지도로 24개 농장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멕시코 메리다 지방을 방문한 인삼 장수의 이야기다. 

본인이 멕시코 메리다 지방을 지나다가 한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중국 사람에게 물으니 한인이 많이 왔으나 통역 두 사람 외에는 모두 농장 주인에게 팔려 온 까닭으로 농장밖에 출입하지 못하며 지극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인 있는 농장을 찾아가다가 길에서 한인 세 사람을 만나니 한 사람은 양복을 입었고 다른 사람은 홑 고의적삼에 발 벗고 가는 모양이 불쌍합더이다. …이곳에 이민 된 동포들이 낮이면 불같이 뜨거운 가시밭에서 채찍을 맞아 가며 일하고 밤이면 토굴에 들어가 밤을 지내며 매일 품값으로 25전씩 받으니 의복은 생각할 여지도 없고 겨우 죽이나 끓여서 연명할 뿐으로 그 처지가 농장 개만도 못하다 합니다, …농장에서 몸을 빨리 놀리지 않는다고 채찍질하며 만일에 몸이 피곤하여 일을 나가지 못하면 창고에 가두는데 그 학대를 견디다 못하여 도망하는 사람이 있으나 말 모르고 길 모르는 까닭에 중로(中路)에서 잡히어 형벌을 받고 금고 되어 있는 사람이 여러 십 명이라고 합니다. 수토불복으로 병 난 사람도 있고 토굴 속에서 자다가 독사에게 물린 사람도 있는데 만일에 중독되어서 오랫동안 병석에 있게 되면 무인지경에 내어다 버리며, 그렇게 되어 버린 사람들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농장 주인이 일터에 나오는 때는 사방에서 십장(十將)들이 채찍을 들고 소리치는 모양은 소몰이하는 목장과도 같으며 그중에 통역 권병숙은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공연히 욕질하면서 채찍질하는 것이 본토인보다 심악하니 그놈의 행위가 분하다고 합니다.

통역 권병숙이 다른 지방에서 오는 사람을 살피는데 만일 이민의 소식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농장 주인에게 보고하여 실정을 조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본인이 와서 있는 것도 권병숙이 보고한 까닭에 농장 주인이 매일 순경을 보내서 언제 가는 것을 묻고 동정을 살피므로 사정을 더 조사하지 못하고 일간에 미국에 가겠습니다.

이것은 인삼 장수 박영순이 북미 한인공립협회에 보낸 서신이다. 

이 책을 읽은 뒤로는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의 모습이 달리 보였다. 교회 할머니들, 루시, 양로원의 할아버지들…. 이들은 모두 역사의 산증인들이며 그 후손들이었다. 이름 없이 독립군을 후원하고 나라를 잃고 농장에 계약이민으로 팔려온 동포들을 도운 사람들이다. 나는 가슴 아픈 이런 핏줄들이 이역 멀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도 이들의 모습을 지워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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