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종소리] 교회가 사회적 성(性)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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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상적 흐름을 가리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고 말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러한 흐름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특히 소위 MZ세대라고 하는 신세대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기초한 교육과 문화 속에서 자라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과 과학에 기초한 판단을 최고의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던 모더니즘을 탈피하는 사고의 흐름을 말한다. 계몽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장을 기초로 꽃피웠다.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이란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스스로의 이성으로 의심과 회의를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는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인간이 지닌 이성의 위대한 능력을 맛보게 하여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을 의지하는 것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런데 이 모더니즘의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의 이성으로 의심을 하는 자신이 자신의 의심하는 그 기준 자체를 동시에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의심과 판단을 스스로의 이성으로 할 수 있다는 교만의 함정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한계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창조주의 질서와 계시를 수용함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모더니즘의 한계를 이성이 아닌 느낌과 성향에 기초함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그 결과 탄생하게 된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중요한 기초 명제는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권위를 가진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가가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판단한다. 무엇이 객관적인 진리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무엇이 가장 주관적인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 결국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구로부터 시작된 ‘사회적 성(性)’ 운동은 과학적 검증으로 판명된 양성(남성과 여성) 체제를 개인이 느끼는 성향으로 파괴하려는 운동이다. 섹스(양성)와 젠더(각자가 느끼는 성)으로 구분해 섹스가 아닌 젠더로 인간의 성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오류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가정과 사회의 근간을 바꾸어놓는 무서운 생각이다. 개인의 느낌을 서로가 존중한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이성과 과학이 분별해놓은 사회적 기준을 바꾸는 엄청난 혁명이다. 소수의 왜곡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기준 자체를 바꾸는 것은 옳지 않은 시도이다. 여러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여 대한민국의 법체계안으로 ‘사회적 성’을 도입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시대적 흐름이라고 다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러한 법을 도입한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을 주목해야 한다. 

어느 대학에서는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성구분없이 이용하는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광고한다. 어느 건물에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할 수 없을 때는 자연히 모두가 이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남녀로 구분할 수 있는 건물임에도 굳이 ‘모두의 화장실’이라고 이름붙여 같이 이용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로 인해 불편하고 혹 성추행이나 범죄의 위협에 놓이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보호를 하지 않는 것이 포용이고 인권인가. 도무지 이성적이지 않은 판단임에도 이성과 과학적 판단에 근거하지 않고 개인의 느낌에 최종적인 권위를 부여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고에 의하면 매우 멋진 일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들이 점점 멋진 일이 되어가는 이 시대는 정말 말세지말이다. 교회는 이러한 현상에 동조할 수 없고 반대하며 왜곡된 흐름을 역행 할 수 밖에 없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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