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낮은 자세로 한국교회를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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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억울하다의 ‘울’자는 한문으로 ‘鬱’이라 쓴다.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억울하게 생겼다. 억울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상대방이 잘못했다 미안하다 하면 깨끗이 정리될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때로는 따지기도 하고 때로는 화도 내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난 행동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를 생각해보면 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로마서(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회개하고 용서를 빌기 전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이미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황금의 열쇠’란 책에 보면 한 여인이 어느 시골교회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왕따를 당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지만 모두가 자기를 오해하고 왕따를 시키니 어찌할 수가 없어서 교회도 나가지 않고 7년 동안을 두문불출 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마을 지도를 펴놓고 거기에 살고 있는 교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신도 모르는 새에 용서가 되고 7년 만에 다시 교회에 갔는데 놀랍게도 7년 전에 지신을 음해하고 왕따를 시켰던 교인들이 이 여인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과거의 억울함은 풀리고 다시 회복됐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흔히들 관계가 좋지 않을 때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갈등의 ‘갈’자는 한문으로 칡나무 ‘葛’이고 ‘등’자는 등나무 ‘藤’이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칡나무는 줄기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뻗어나가고 등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뻗어나가 서로 얽히면 풀리지 않고 꼬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신앙의 어려움을 겪었다. 교회가 문을 닫고 때로는 성경에도 없는 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예배 아닌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죄악은 원인이 있고 그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벌을 내리셨다. 에스겔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세대를 향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을 할 수 없도록 입을 봉하고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회개를 외칠 때만 말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얼마나 입술로 죄를 짓고 상처를 입혔으면 하나님께서 보다 못해 2년 6개월 동안 마스크를 씌워서 우리 입을 봉하셨을까? 

이제 우리는 다시금 회개하고 주님께서 그토록 외치셨던 사랑과 화목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장로들이 살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이 나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도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코로나 이전으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칡나무와 등나무의 얽혀 있는 줄기를 장로들에게 풀도록 맡기셨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장로들이 회개하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더 낮은 자세로 성도들과 한국교회를 섬겨야겠다. 장로가 되고 교계의 어느 단체장이 되기까지는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헌신과 충성을 했는가. 그런데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교계에서 이런 모습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본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 머지않아 먼저 간 믿음의 형제들과 우리 주님 앞에 서게 될 텐데 그때 부끄럽지 않은 장로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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