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6)   불우한 이웃의 벗이던 소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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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다시 살아난 첫 기적

일하는 시간 외에는 책을 가까이

위대하고 청빈한 교역자의 본

불쌍하고 가난한 자에게 나눔 실천

태은 소년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숨진 동생 옆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태은 소년은 잠결에 신음소리 비슷한 것을 들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생 쪽을 보았다.

홑이불이 움직이면서 신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뒤이어 홑이불이 제껴지면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광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형, 나 천당 갔다 왔다” 하고 그는 말했다. “뭐라고?” 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당에 갔더니 ‘너 좀더 있다 오너라’라고 해.”

집안에서는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다고 야단법석이었고, 뒤이어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세 살 때 홍역을 앓다가 죽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일이 이 세상에서의 첫 기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기적은 어린 광은으로 하여금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이 세상은 그야말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생을 살게된 빌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자 거지 ‘널리널리’

황광은 목사의 동생 황정은 장로(캐나다 거주)는 ‘동생이 본 황광은 목사’라는 글에서 가정 사정과 광은 소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 어머님은 아들만 8형제를 낳았다. 그러나 홍역을 하다가 반은 죽고 나머지 4형제만 살아 남았다. 때문에 큰 형님 태은 장로와 광은 형님은 10년 터울이고, 광은 형님과 나는 5년, 나와 내 동생 종은 교수와는 7년 터울로 간격이 넓다. 큰 형님과 나는 15년 차이라 아버지와 같이 어려웠고, 큰 형님은 실제로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서 담당하셨다.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일찍부터 큰 형님이 생계의 책임을 지신 것이다.

큰 형님 혼자 벌어서 10여 명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던 환경이라 광은 형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형님이 경영하시던 인쇄소 일을 도왔다. 어떤 때는 공장 안의 일을 거들었고, 어떤 때는 자전거를 타고 30리, 40리 되는 면 소재지까지 찾아다니며 영업 활동을 해야 했다.

나는 광은 형님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자면서 자랐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의 소년 시절 인생에 대한 고뇌와 번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활을 자기의 것으로 옮겨 살려고 노력하는 깊은 신앙, 범인들이 할 수 없는 그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왔다.

그는 늘 책과 같이 있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늘 책을 읽었다. 중학교 통신 강의록을 비롯해서 가가와 도요히코(賀川量參),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등을 비롯해 신앙 서적과 철학 서적들을 읽었다. 일생을 고아와 가난한 자들의 벗으로, 그리고 위대하고 청빈한 교역자로 살다가 간 광은 형님의 인생 목표는 이때 정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은 소년은 글을 깨치면서 당시 세계적인 설교자요 베스트셀러의 작가이기도 했던 가가와 도요히코의 소설 ‘사선(死線)을 넘어서’, ‘한 알의 밀’ 등을 읽으며 큰 영향을 받았다.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돕는다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광은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생득적인 성격이었다. 대여섯 살 나서 한창 개구쟁이로 놀 때, 명절이라고 어머니가 새 옷을 사다 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흘이 못가서 새 옷은 헌 옷으로 둔갑을 하고 만다. “광은아, 새 옷 어떻게 했니?” 하고 어머니가 물으면 좀처럼 해서 대답하지 않는다. 어루고 달래고 꾸중하면서 물으면, 마지못해 대답하는 말이 아무개가 하도 추워해서 벗어 주었다는 것이다.

신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이나 생일날에 운동화를 사주면, 사흘을 못 신고 가난한 아이의 헌 고무신과 바꾸어 신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탄식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사람 구실을 하지?”

자기의 것을 남에게 기꺼이 준다는 것, 그것이 한 개인이 죽었을 때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미덕이 될 수 있지만,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는 한갓 어수룩한 노릇으로밖에 인정되지 않는 현실이 아닌가. 광은의 어머니 역시 자기 자식이 자기의 것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남에게 주는 것를 보고, 너무 착하고 어수룩해서 그러려니 하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광은의 어렸을 때를 그의 형 태은 장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그는 자랄 때부터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여덟 살 나던 때의 일이다. 그는 저녁때만 되면 저녁밥을 짓고 있는 어머니께 부탁해서 자기의 밥 대신 누룽지를 긁어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께서 밥을 다 푸시고 크고 둥글게 누룽지를 뭉쳐 주면 신이 나서 밖으로 내달리곤 했다.

매일같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상히 여겨져 어머님과 내가 광은이 뒤를 밟았다. 그가 밀치고 뛰어나간 대문 밖에 여덟 살 짜리와 여섯 살 짜리 꼬마 거지가 기다리고 있다가, 광은이가 싸 가지고 나온 누룽지를 받아서 정신없이 나누어 먹고, 어린 광은이는 만족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여덟 살의 어리광 피울 나이에 자기 몫의 밥을 누룽지로 바꾸어 어린 두 거지의 저녁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형은 그 광경을 못 본 체하고, 광은이 모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늦게야 광은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광은아, 너 어디 갔다 인제야 오니?” “친구들하고 놀다 왔어요.” “거짓말하면 못 쓴다. 얼마 전에 네가 형제 거지하고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불쌍하거든요. 그들은 너무 어려서 밥을 잘 얻어먹지 못해요. 그래서 늘 배가 고프대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밥 대신 누룽지를 먹겠다고 하고선 그 거지들에게 갖다 준 거냐?” “난 조금도 배가 고프지 않아요.” 어머니는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아들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전 장신대 학장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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