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돈과 행복의 묘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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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에 내 짝은 장관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특별하게 부자티를 내지도 않았고, 우리들과는 평범한 보통의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 우리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개인 가정교사가 있어 방과 후에는 집에서 특별과외 공부를 하기에 수업만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그는 그때마다 아버지의 관용차로 집으로 향했고 우리는 학교 정문에서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그를 배웅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그가 특별하게 부럽지도 않았고, 그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생일’이라고 친구들 몇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방과 후에 그가 늘상  타고 다니던 관용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돌로 지은 으리으리한 장관 관사로 우리를 안내했고, 식탁에 앉아 평소에는 보지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우리는 신나게 그의 생일을 축하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집을 나서서 내가 살고 있던 누추한 집으로 들어서면서 다행스럽게도 ‘그가 몹시 부럽다’라는 생각보다는 ‘그는 나보다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다음날부터 우리는 예전과 상관없는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그 후에 우리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헤어졌는데, 당시에 나는 그보다 좋은 학교에 진학했지만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게 되었다.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났건 혹은 좋은 학교에 다녔던 그런 일이 우리의 생애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했다고 여겨진다. 그와는 30년 후 우리가 불혹의 나이가 지난 후에 내가 살던 LA에서 만나 얼마간은 옛정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그때는 이미 누가 더 성공했는지를 따져보는 일이 없이 서로가 건강함을 기원하며, 이따금씩 조우하곤 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알 수 없지만, ‘행복’은 ‘돈’에 따라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행복지수’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국민 소득이 높은 덴마크나 스웨덴 국민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우리가 알기에는 몹시 궁핍하게 사는 네팔 국민도 자신들의 삶에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예전에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던 우리의 삶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 속에서 살면서 조금씩 행복을 느끼며 생활했던 때를 상기하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미처 느낄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집에 ‘제니스(Zenith)라디오’만 있어도 부자로 인정받던 때도 있다면,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돈이 많다는 것은 일면 생활이 윤택하고, 그것은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잘 활용해 올바르게 써야지, 자칫 잘못하면 돈의 노예가 되어 행복은 커녕 자신을 망치게도 된다. 이는 돈은 좋은 방면으로 잘 활용하면 약이 되지만, 반대로 나쁜 곳에 사용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또한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써야지 손에 움켜쥐고만 있으면, 아무런 쓸데없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또한 돈을 잘 활용해야지 절약한다고 잡고 있으면 돈의 노예가 되어 이 돈으로 자신을 옥죄는 마법을 행사할 수 있다. 살아있는 동안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돈을 써야만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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