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46) 알브레히트 뒤러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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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 자화상’…진정한 예술가로서 내적 성찰

목판화·동판화, 당대 최고 솜씨 자랑한 작품

<스물 두 살의 자화상>에서 뒤러가 든 푸른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는 엉겅퀴로 ‘남자의 충절’을 의미한다. 뒤러가 약혼녀인 아그네스 프레이(Agnes Frei)에게 선물한 이 자화상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신부로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 최초인 유화로 된 자화상이다. 

한손에 엉겅퀴를 들고 멋지게 차려입은 22살의 청년은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균형과 조화가 잘된 이 작품은 화가의 성격과 그림 속 인물의 맑은 심리까지 표현하고 있다.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스물두 살의 자화상>, <장갑을 낀 자화상>은 뒤러의 3대 자화상이다. <장갑을 낀 자화상>, 그림 속 뒤러를 보면 자신만의 특징인 자신감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그는 베네치아 풍의 복장과 당시 유행하던 흑백의 줄무늬 모자를 썼다. 머리 스타일과 수염의 세부 묘사는 북유럽 화풍을 계승하고  창문을 통해 산과 먼 바다의 조그마한 풍경의 세부 묘사는 동시대의 베네치아 파와 피렌체 파의 작품들을 암시한다. 실내에 있는 자신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또 다른 세계인 멀리 보이는 광활한 풍경과 자신의 세계를 구별한다.

뒤러의 <나체 자화상>은 당시 나체 자화상은 유럽에서 드물었다. 그림 속 인물은 뒤러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며 몸은 앙상하게 말랐고 얼굴 표정도 어둡고 무거웠다. 서른 중반의 뒤러는 이미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나체 자화상>은 우아함과 자신감 있던 이십 대의 자화상과 다르다. 비록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내적 성찰을 한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이탈리아 인문주의 경험과 인문주의자 빌라발트 피르카이머(1470-1530)의 영향으로 양식화된 자화상이다. 뒤러는 이탈리아를 두 번 여행했는데 예술가들이 존경받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뒤러는 르네상스 미술을 북유럽에 전했다. 그는 이전 화가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겼다. 자신의 이름 첫 자인 A와 D로 복합적인 문양을 만든 자의식 강한 화가였다. 서명은 화가의 신분 확인과 이름을 널리 알린다. 도용할 수 없도록 모노그램을 사용했다. 법원에 저작권 보호 신청을 했다. 뒤러는 홍보의 중요성과 자신의 작품을 유통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이용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외국으로 팔려고 전문 대리상을 고용했다.

뒤러는 북유럽에서 판화로 성공한 미술가가 되었다. 판화는 나무로 했으나 더욱 선명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동판화로 발전시켰다. 동판화는 더 선명하고 분명한 선을 나타내며 복제할 수 있다. 평민들이나 가난한 사람들도 작품을 소유할 수 있다. 뒤러의 목판화와 동판화는 당대 최고의 솜씨를 자랑했다. 그가 1497년경에 그린 목판화 <묵시록의 네 기사>나, 1513년에 그린 동판화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를 보면 그가 뛰어난 판화가임을 알 수 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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