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아내 아닌 여인과 한 번의 데이트

Google+ LinkedIn Katalk +

다음은 어느 미국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나는 저녁시간에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실은 아내의 권유였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잖아요? 인생은 짧아요. 당신은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요.” 아내의 그 말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근데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나 나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당신은 그녀도 사랑하잖아요?” 아내가 만나라고 한 여자는 실은 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보내신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직장 일과 아이들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식사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의아해하시면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혹시 나쁜 일은 아니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내 어머니 세대는 저녁 7시가 지나서 걸려오는 전화는 나쁜 소식일 거라고 믿는 세대입니다.

“그냥 엄마하고 단둘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싶어서요. 괜찮겠어요?” 잠시 후 어머니가 덤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꾸나.” 다음 날 저녁, 일이 끝나고 차를 몰고 어머니를 모시러 갔습니다. 그날은 금요일 밤이었고 나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마치 첫 데이트를 할 때 갖게 되는 두근거림이라고나 할까? 도착해서 보니 어머니도 다소 들떠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벌써 집 앞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는데 근사한 옛 코트를 걸치시고, 머리도 다듬으신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애인을 기다리는 소녀같이 환한 미소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차에 오르시며 “친구들에게 오늘 밤에 아들과 데이트하러 간다고 했더니 모두들 자기들 일인 양 들떠있지 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간 식당은 최고로 멋진 곳은 아니었지만 종업원들이 기대 이상으로 친절했습니다. 어머니가 살며시 내 팔을 끼었는데 마치 대통령 영부인이라도 되신 것 같았습니다. 자리에 앉자 어머니가 “내 눈이 옛날 같지가 않구나.” 하시면서 메뉴를 읽어달라고 하셨습니다. 메뉴를 반쯤 보다 눈을 들어보니 어머니가 향수에 젖은 미소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는 내가 너한테 메뉴를 읽어 줬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읽어드릴게요, 엄마.” 그날 밤, 우린 특별한 주제의 대화도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와 끊임없이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자 어머니는 빙긋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오자꾸나. 다만 다음번엔 내가 낸다는 조건이야!” 어머니를 다시 댁에 모셔다 드리면서 어머니를 포옹하고 어머니의 볼에 키스하며 내가 어머니를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멋진 저녁이었어. 그렇게 할 수 있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사랑하는 어머니가 뜻밖에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이어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어머니와 내가 함께했던 식당에서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번 데이트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구나. 그러니 이번엔 너와 네 아내 둘이서 너와 내가 했던 시간처럼 함께 즐겼으면 좋겠구나. 식사비용은 내가 미리 다 지불했다.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했던 그날 밤의 시간들이 내겐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네가 꼭 기억해주면 좋겠구나! 사랑한다! 엄마가.”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과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족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글은 문 장로가 근 30년 전, 재미(在美) 친지로부터 받아 읽었던 글인데 최근 다시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30년 전, 당시에는 50대 장년(壯年) 아들의 입장에서 글의 내용을 읽고 이해했는데 이번에는 80대 늙은 부모의 입장에서 글을 읽게 되니 더욱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하였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