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78) 고찬익 장로 ②

Google+ LinkedIn Katalk +

<예수 집>에는 토박이만 아니라 타관 사람들도 드나들었다. 1893년 원산 최초 교회인 광석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교회를 창 앞 교회라고도 불렀다. 차재명 목사의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는 광석동 교회의 시작을 “선년에 선교사 게일과 소안론이 시처에 내주함으로부터 교무에 전력 할새 게일은 어학 준비와 성경 번역을 담당하여 후래에 한영자전과 누가복음이 발행되었고 소안론은 선복을 환착하고 조사(助事) 전군보, 이기풍 등과 병력하여 수륙 각지에 열심히 전도함으로 원산 부 내 김용보, 송창운, 김수억, 유태연, 이근식 등이 전후 신종하여 교회가 성립되고 김수억, 오승초, 강경조 등은 합동 연보하여 구화 8백 냥으로 동내노전을 매입하였다가 후대에 역장 기지로 척매하여 교회의 기본금을 설치 하니라”고 했다.

날로 교회가 발전하여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왔다. 특히 모학수라는 원산의 유력한 사람이 교회에 나와 봉사하니 광석교회에 큰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갖바치 출신의 고찬익은 게일 선교사와 서울에 가서 연동교회를 부흥시킨 사람으로 광석교회에서는 밤낮으로 전도하며 교회 일에 전념하였다.
또 게일 목사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번역했을 때 그림을 그린 김준건은 중이었다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이호재, 김수억, 차을경, 후에 목사가 된 전계은도 광석교회의 최초 교인으로 그 열심과 전도에 전념한 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이 게일과 소안론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후 함경 남․북도로 흩어져서 전도에 힘쓰니 여러 교회가 광석교회로부터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고찬익은 평안남도 안주 사람으로 젊어서 방탕하여 고향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30세 전에 함경남도 원산에서 자리잡고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갖바치 출신으로 원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국의 팔도강산을 떠돌아다니며 사람을 속이는 노름꾼, 사기꾼, 술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부랑자였다. 젊어서 싸움 잘하고 난봉 부리다가 관가에 붙잡혀 가서 매를 많이 맞아 몸에 상처가 많았다. 그러다가 폐인이 되어 아주 벙어리가 되었고, 그래서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고, 절간에 찾아가 불공을 드리기도 하였지만 벙어리 귀신은 나가지 않았다.

1892년 7월 원산에 온 게일 선교사가 전도하러 거리에 나갔다가 고찬익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게일 선교사는 벙어리 고찬익을 보자 불쌍한 생각이 나서 전도지를 주며 예수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꿈에 하늘에서 소리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였다. 고찬익은 꿈에서도 말을 못하고 속으로 “고, 고, 고”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두 번째로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고찬익은 너무도 무섭고 떨려서 방바닥에 엎어져서 “내 이름은 고가올시다. 싸움꾼이고 술꾼이고 망나니올시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울면서 말했다.
그러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앞에 나타나서 그의 몸을 만지면서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 하고 사라졌다. 하도 이상하여 어제 낮에 양도깨비 예수꾼 게일 선교사에게 받은 전도지와 쪽 복음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갑자기 혀가 완전히 풀리고 말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고찬익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