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79)고찬익 장로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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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밤중에 봉수대에 있는 <예수 집>의 게일 선교사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자다가 깬 게일 선교사가 반갑게 “형님, 잘 오셨습니다” 하고 말하며 너무나 친절하게 맞았다. 그는 꿈에 일어난 일과 자신이 벙어리인데 말을 하게 됐다고 고백하였다. 게일 선교사는 마가복음을 주면서 9장 1절부터 29절까지 읽으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벙어리 귀신이 나가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게일 선교사의 집 문간방에 살면서 물 긷고, 장작 패고, 불을 때는 일을 했다. 성경과 찬송과 기도를 열심히 배웠다. 한편 게일 선교사는 사랑이 깊고 말 잘하는 고 찬익으로부터 소리(시나위)와 장고 치는 데 넋을 잃고 한국 고유의 곡조로 찬송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장고, 북, 꽹과리 치는 법도 배웠다.
이때 게일 선교사는 이름 없이 성 고(高)만 있는 그에게 “세상을 빛나게(燦)하고 이롭게(益)하라”는 뜻으로 찬익(燦益)이라 지어 고찬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지난날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고 나쁜 일만 하는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이제는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칭찬을 받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고찬익>이라 지어 준 것이다. 고찬익은 선교사들에 의해 조사로 임명되었으며 동네마다 다니며 장고 치고 소리하면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유창한 말솜씨로 전도하였는데 심지어 멀리 문천, 안변까지 갔었다.

원래 머슴이기도 한 고찬익을 알게 된 뒤 게일 선교사는 그가 쓴 [한국인의 생활풍습]에서 한국인의 머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한국의 머슴은 한국 민의 순종(純種)이다. 머슴은 무식하지만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 민의 순박한 특성을 담뿍 지니고 있다. 머슴은 태연자약하고 용감하고 충직하고 지칠 줄 모르며 굳세다. 그래서 머슴에게는 서구문명 받아들이기에 알맞은 그 어떤 힘이 있다”고 했다. 게일 선교사는 예수님께서 무식한 베드로와 요한 등을 훌륭한 사도로 세운 것을 재현했다. 전통적인 천민으로서의 신분에서 벗어나 천부의 인권을 찾아 거듭난 고찬익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1893년 게일과 소안론 선교사의 전도로 원산 최초의 명석교회가 설립되었다. 함경남·북도로 교회가 퍼져 간 근원지 명석교회였다. 고찬익은 교회의 지도자로 부흥에 기여했다. 원산 중창리에 김 수억이라는 사람을 전도해 그의 가족 전체를 명석교회 핵심 교인이 되게 했다. 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김준근도 이 교회 교인이었다.
1894년 고찬익은 명석교회에서 소안론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1899년 9월 게일 선교사를 따라 상경해 연동교회에 왔다. 이때 연동교회 초대 목사가 된 게일 목사의 조사로 고찬익은 계속해서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한번은 예수를 믿기로 한 사람을 심방했다.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 노동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된다고 했다. 노동은 천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다음 날 고찬익은 노동복을 입고 그를 찾아가서 함께 노동하러 가자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라나섰다. 선교사의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게일 목사가 보고 왜 노동을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고찬익은 아무 말 없이 함께 노동하여 저녁에 자기가 받은 노임까지 그에게 주었다. 다음 날 또 함께 일을 했다. 그리하여 노동을 하는 것이 가정에 유익될 뿐 아니라 노동은 천한 사람의 직업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삶의 방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가정도 예수를 믿고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다.
불구자 서너 명이 모여 있는 빈민굴에 가서 전도하였다. 저들은 교회에 가기를 원했으나 불구자이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고찬익은 한 명씩 업어서 교회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강단에서 설교했다. 고찬익의 전도는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노동을 가르치고, 병든 사람은 업어 데려옴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 주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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