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아인 복음화의 과제

Google+ LinkedIn Katalk +

그동안 농인들의 이야기를 게재해 왔다. 장로신문 발행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장애인 중 가장 알려지지 않고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농인들의 실상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배려로 여겨진다. 농인들이 우리나라에 37만 명이나 되고 전 세계에는 15억 명 정도가 어느 정도의 청력 손실을 가지고 있으며 4억 3천만 명 (WHO, 2021) 정도는 재활이 필요한 상태이다. 이렇게 많은 청각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있는데 왜 그들은 소외된 듯하고 관심 받지 못하는가? 다른 장애와 달리 청각장애는 외관상으로는 그 장애를 쉽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지 않고는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이 소리를 듣고 있는지 못 듣고 있는지 분별하기가 어렵다. 농인들은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먼저 자신이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농인들이 주위에 있는지를 아는 것은 그들이 수어를 사용하거나 청인이 대화를 시도하였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청인들은 농인들이 어떠한 문화권에 살고 있는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물고기가 물의 느낌을 느끼지 못하며 물속에서 자유스럽게 지내는 것처럼 청인들은 늘상 들려오는 소리 문화 속에서 이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의식 없이 지낸다. 농인들의 소리 없이 지내는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짧은 글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면이 많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동영상 한 편을 보았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 문화권에 들어가서 생활해 보기 전에는 세세한 문화적 차이를 납득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소리 문화권과 시각 문화권의 차이는 인지의 입력 방법과 해석 방법이 다르다.

그들의 언어와 관습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가 타지에 파송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그 현지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며 둘째로는 문화를 숙지하는 일이다. 언어를 알아야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영어를 모르고 영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처럼 수어를 모르고 농문화를 이해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농인들의 언어인 수어를 알려고 노력하는 청인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아마도 외국어를 배우려는 청인들에 비해 월등히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어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농인에 관심 있는 청인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 역시 다른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다. 농인들의 문화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다. 이러한 요인들도 그들이 소외되고 이해 받지 못하고 지내게 하였다. 필자는 그간 농인들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하였지만 그들의 삶을 충분히 대변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을 줄 안다. 자연의 소리를 비롯해서 인간의 소리 등을 못 듣고 지내는 것을 상상하기만 하여도 아주 다른 세상임을 알 수 있다. 소리를 못 듣고 지내는 소리 없는 세상을 묵묵히 이겨내는 농인들의 삶에 대한 용기와 지혜에 숙연해진다. 자녀가 “엄마” 하고 다정히 불러 주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말은 우리를 저미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농인의 심정을 이해하셨기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복음이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교회와 우리 사회가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금번 66회로 본 칼럼이 마감된다. 그동안 농인에 대해 게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장로신문 편집부와 아울러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 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