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언더우드 2세와 6.25 전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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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비극과 믿음」을 쓰다

언더우드 2세(원한경)는 한국학의 대학자였다. 조선기독교대학[연희전문학교] 부교장이자 심리학 교수였던 그는 동시에 왕립아시아학회의 일원으로서 동 학회의 요청에 따라 서양 문헌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 앞에는 같은 주제로 그가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에서 발표한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총 2,842가지의 문헌을 주제별로 분류해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도서관에 관심이 많았다. 후일 연세대학교 초대총장을 지낸 용재 백낙준 박사가 연세대학교에 도서관학과를 설립한 것 역시 언더우드 2세의 이러한 관심을 계승한 것이었다.

언더우드 2세는 공산주의 게릴라에 의해 부인이 피살되는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 심장병을 얻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에서 북한 괴뢰도당 김일성의 6.25 남침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는 건강을 염려하는 주위의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비행기 안에서 어떠한 참고서적도 자료도 없이 써내려간 책이 바로 이 책 「한국의 비극과 믿음 Tragedy and Faith in Korea」이었다. 여기에서 비극이란 바로 6.25전쟁을 말하는 것이요, 여기에서 믿음이란 바로 한국이 6.25전쟁을 신앙의 힘으로 뚫고 일어날 것을 비전으로 바라본 것이다. 

아무 자료 없이도 책을 쓸 만큼 그는 한국을 그 어느 미국인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과 특히 기독교복음과 선교에 관심을 기울인 많은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려줄 책이 필요했다. 어떤 뜻있는 출판사의 이러한 제안을 받고서 언더우드 2세는 전쟁이 발발하자 곧 한국으로 다시 오면서 그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써 내려간 것이다. 이 일에 그만한 적격자가 따로 없었다.

2. 언더우드 2세가 본 6.25동란의 발발 배경

“한국 역사에 있어서 1950년 6월 25일은 중요한 날이다. 바로 북한에 있던 공산당이 한국을 침공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은 전쟁으로 인해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단번에 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한국전으로 주목받았던 한국의 첫 모습은 전쟁으로 인한 참상 그 자체였다.”

책의 첫머리에서 언더우드 2세는 6.25전쟁을 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일어난 변화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짐작하건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입국론’의 4대 기둥 위에 선 대한민국이 이 땅에 세워지고 나서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제는 일찍이 한국 땅에서는 없었다. 그런데 이 신생 자유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소련과 그 괴뢰정권 김일성에 적화 팽창 야욕에 의해 유린 되고 있음을 언더우드 2세는 보았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시점에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만, 러시아가 한반도 북쪽을 점령하면서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한국전쟁 발발의 배경이 되고 만다.”

류금주 목사

<청교도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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