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문둥병자를 재워준 사람의 이야기

Google+ LinkedIn Katalk +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 한 사제(司祭=가톨릭에서 주교와 신부를 아울러 이르는 말)가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누가 사제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제로 살아온 자신이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나병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뜩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병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솔직히 안 된다고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제의 양심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문둥병으로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며칠째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사제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나병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었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병환자가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만 나병환자는 가기는커녕 기침을 콜록거리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나병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1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나병환자에게 양보하고 할 수 없이 맨바닥에서 자려고 누웠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나병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나병환자의 요구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내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대로 겉옷을 모두 벗고 나병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차마 상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1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나병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께서 환히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의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저는 아무것도 주님께 해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 할 나병환자는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냄새가 배어 있어야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아무도 왔다간 흔적이 없었습니다. “아! 그분이 주님이셨군요. 주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사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밤에 나병환자에게 불친절했던 자신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가 자주 노래로 부르는 아래의 기도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하략]. 

여기서 한 성경구절(마 25:40)이 떠오릅니다.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