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절망과 희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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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하기를 “희망은 햇빛이고 절망은 어둠이다”라고 했다. 희망은 생명이고 절망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자신의 소중한 삶에 임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관점을 심리학이나 철학에서는 자아관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자아관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부정적 자아관이고, 둘째는 긍정적 자아관이며, 셋째는 불행한 자아관이다.

부정적 자아관은 자기가 자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키가 작다’, ‘다른 사람보다 못생겼다’, ‘다른 사람보다 가난하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나는 무능하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이다’,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다’고 하며 인생을 완전히 절망의 무덤으로 가지고 가는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인생에서 자신을 비하하고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생의 기력을 잃고 미래를 잃어버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희망을 가진 사람은 아침에 밝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다. 괴테는 말하기를 “해가 비치면 먼지도 빛난다”라고 했다. 먼지는 더러운 것이지만 밝은 햇빛을 받으면 복을 발한다. 희망을 가질 때 우리의 얼굴은 밝아지고 눈에는 광채가 생기고 걸음걸이는 활기를 띠고 태도는 씩씩해진다.

스피노자는 “내일 세계에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희망을 가진 자는 가령 내일 이 지상에 파멸이 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늘의 할 일인, 미래를 위한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이다. 부정적 자아관의 노예가 되는 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다. 이런 사람은 절망하고 위축되어 좌절감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와 반대로 긍정적 자아관은 자기가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나를 플러스 측면에서, 희망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 어거스틴 대학의 한 교수가 친구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친구의 여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여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나 장애의 몸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의 얼굴에는 햇빛같이 빛나는 웃음이 가득했고 희망의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그 교수는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자매님,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상황인데 어떻게 이런 행복한 표정과 아름다운 미소가 넘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소녀는 아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나는 비록 팔과 다리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선 눈이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책도 많이 읽을 수 있고, 부모님의 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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