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안질 걸린 바울과 시력 잃은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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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서 나와 비슷한 동질감을 찾는다면 그의 몸을 괴롭히던 ‘육체의 가시’다. 그는 나처럼 안질로 시력이 급속하게 떨어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간질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질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야 바울에게서 위로를 얻고 그에게서 내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 친근하게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안질이든 간질이든 그것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바울의 가시는 안질이었을 것이다. 다메섹에서 사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는 사건으로부터, 두 번째 선교여행에서 의사 누가가 합류했고, 디모데와 실라 같은 바울의 동역자들이 언제나 바울을 떠나지 않고 동행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모든 편지 글은 바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빌려 썼다는 사실에서도 안질설(說)은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바울을 괴롭히던 가시가 안질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지만 그럼에도 그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순례와 선교의 삶에 헌신했다는 것이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그는 죽음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의 신학이며 삶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누군가의 동행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바울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생각한다.

요즘 나는 나의 남은 삶에 대해 깊은 묵상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 앞에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절망한다. 고통스럽다는 말을 넘어 이제는 이 어둠의 깊은 수렁에서 너무 외롭고 두렵다. 죽는 날까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의 시간이 흘렀건만 나는 작은 문제에도 시각장애를 탓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바울을 생각하며 위로와 희망을 찾는다. 그에게서 나는 내 남은 삶의 길을 배워야 한다. 바울처럼 살아가야 내 장애의 한계를 넘어 의미있게 잘 살다가 떠나는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한 번도 한곳에서 안주하거나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안디옥은 바울의 근거지였음에도 그는 안디옥을 베이스 캠프로 여겼을 뿐 그곳을 자신의 마지막 거처로 여기지 않았다. 하물며 마지막으로 여겨지던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황에서도 그는 안디옥이 아닌 예루살렘을 선택했다. 고린도와 에베소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길어야 3년을 머물렀을 정도로 영원한 유목민으로 살아가려 했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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