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목사 열전 (1) 한국교회의 첫 선교사 이기풍 목사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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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 부정적 인식, 전도에 어려움 많아

제주서 17년간 섬김으로 진정한 복음 전해

이기풍 목사가 전도자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전도는 어려웠다. 제주 방언을 알아듣지 못했고 제주민은 평양 사투리를 알지 못했다. 또 천주교인 학살사건의 영향으로 모두 증오에 찬 눈으로 보았다. 제주에 개신교가 들어온 때는 1901년에 일어난 ‘이재수의 난’ 때문에 제주민들 사이에 천주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기풍 목사는 성재 장터에서 전도하다가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당했고 가는 곳마다 싫어하는 눈초리와 어려움에서 전도를 시작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던 이기풍 목사는 우선 제주를 익히려고 조랑말을 타고 한라산을 돌려고 나섰다. 그러나 인적이 드물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고 또 만나도 상대 해주지 않았다. 영양부족으로 고통과 사람이 없는 곳에서 전도도 할 수 없어서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극심한 영양실조인 이기풍 목사는 모래사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에 누가 깨워서 일어나니 해녀의 집이었다. 이기풍 목사는 처음으로 제주인과 말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여기서 며칠 머물며 해녀에게 전도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바닷가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에게 전도한 것같이 하나님은 해녀를 구원해 주셨다.

이기풍 목사는 17년간 제주에서 선교했다. 그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채택했다. 전도와 목회에는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섬김으로 진정한 복음을 전했다. 그는 농번기에 농민들을 도왔다. 제주인들은 엽전을 돌려 운수를 정했는데 이기풍은 엽전 한쪽은 천국 다른 쪽은 지옥으로 정하고 돌려 천국과 지옥을 설명했다. 이때 홍순홍이 예수를 믿었다. 제주는 미신이 많았다. 특별히 뱀을 숭상했는데, 뱀을 뒷집 “하라 방”이라 했고 뱀을 위해 밥도 지었다. 이기풍은 몽둥이로 뱀을 때려잡았다. 사람들은 놀랐으나 이기풍은 끄떡하지 않았다. 

제주인은 외지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이기풍 목사는 심한 평안도 사투리였고 제주인들은 특이한 사투리였으므로 소통이 어려웠다. 그들에게 복음 전하려니 더욱 어려웠다. 다행히 경성에서 세례받은 토박이 김재원을 만났고, 함께 전도해서 홍순홍과 함께 김행권 집에서 예배하므로 성내교회와 제주선교의 길을 열었다.

제주, 이호리에 김재원이 복막염에 걸렸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제주에서 방법이 없어 그의 아버지는 소문을 들은 대로 아들을 업고 서울 제중원으로 갔다. 거기서 가나다 출신 미국 북 장로교 의사 에비슨(O.R.Avison)을 만나 김재원의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진찰결과는 좋지 않았다. 에비슨이 병이 깊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아버지는 살리든 죽이든 알아서 하라며 아들을 제중원에 두고 돌아갔다. 이를 딱하게 여긴 에비슨은 김재원에게 “이병의 치료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당신이 예수를 영접하라.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수술을 해보자.” 여기에 응한 김재원은 일곱 번의 수술 끝에 소생했다. 김재원은 몸소 체험한 하나님의 치유로 예수를 영접했다. 그리하여 마태 쪽 복음을 한 짐 지고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에서 전도하면서 박해를 받았다. 몰매, 멍석말이, 치도곤을 당했으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켰다. 그는 자기의 수술 자국을 보여주면서 기적을 간증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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